[ET시론] 토큰증권 입법,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금융혁신의 핵심 과제

한국 자본시장은 금융과 기술의 융합 속에서 새로운 질서를 맞고 있다. 이 변화의 흐름은 토큰증권(Security Token)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근주 핀테크산업협회장
이근주 핀테크산업협회장

토큰증권은 블록체인 기반의 분산원장 기술을 활용해 실물자산이나 무형자산의 권리를 디지털 형태로 전환해 거래할 수 있게 하는 제도다. 이는 단순한 기술의 적용이 아니라 자금의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금융 혁신이자 정책 과제다.

그동안 부동산, 매출채권, 특허, 예술품 등 비정형 자산은 자본시장에서 정당한 평가를 받기 어려웠다. 블록체인을 활용하면 자산을 세분화하고 거래 이력을 투명하게 기록해, 누구나 일정 지분을 안전하게 보유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술력과 아이디어를 가진 중소기업이 자본시장에 직접 접근할 수 있는 기반이 되며, 금융의 포용성과 산업의 다양성을 동시에 확장시킨다.

국내에서는 금융위원회의 혁신금융서비스 특례를 통해 부동산을 비롯한 실물자산의 디지털 유동화가 본격화되고 있다. 블록체인 기반으로 자산 지분을 발행하는 시범사업들이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으며, 일부 프로젝트는 소액 투자자의 활발한 참여로 단기간에 모집을 완료하는 등 제도적 실험이 시장 혁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또 음악, 콘텐츠, 지식재산권 등 기존 자본시장에서 다루기 어려웠던 자산이 디지털 형태로 분할·관리되며, 새로운 자산군이 점차 제도권 금융으로 편입되고 있다.

변화가 제도적으로 정착되면 투자 접근성이 한층 높아지고, 유동성의 범위 또한 기존 금융의 경계를 넘어 확장될 것이다.

세계 주요국은 이미 이 변화를 제도권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유럽연합(EU)은 Markets in Crypto-Assets Regulation(MiCA)을 통해 디지털자산 규제를 통합했고, 미국·싱가포르·일본·홍콩 등은 부동산과 기업채권, 국채 등 다양한 자산의 토큰화를 시범사업 형태로 추진하고 있다.

이러한 글로벌 흐름 속에서 우리 정부와 금융당국도 변화의 중요성을 일찍이 인식하고 지속적으로 제도화를 추진해왔다.

금융위원회는 4월부터 8차례 이상 공식석상에서 토큰증권 제도화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정부는 토큰증권을 디지털자산 분야 중 유일하게 123대 국정과제와 12대 중점 전략과제에 동시 포함시켰다. 이는 토큰증권이 단순한 금융상품을 넘어 중소기업의 자금조달 구조를 혁신하고 자본시장의 체질을 개선할 핵심 인프라라는 국가적 판단을 반영한다.

증권과 토큰증권 디지털화 개요(출처-금융위원회)
증권과 토큰증권 디지털화 개요(출처-금융위원회)

토큰증권의 핵심 가치는 신뢰다. 블록체인은 거래 내역을 분산원장에 기록해 누구나 검증할 수 있으며, 위·변조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에 스마트 컨트랙트(Smart Contract)가 결합되면 자금의 집행과 배분이 자동화된다. 기존 금융 인프라가 안고 있던 시간·비용·책임의 불균형을 기술이 스스로 해결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출정보가 블록체인에 자동 반영되고, 투자자에게 배당금이 실시간으로 분배된다면, 투자자는 기업의 성과를 투명하게 확인하고 즉시 보상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기술적 신뢰'가 실물경제의 신뢰로 전환되는 지점이다.

이러한 노력의 결실로, 금융위원회는 토큰증권 발행·유통 규율체계 정비방안을 발표하고 전자증권법과 자본시장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제 이 법안은 단순한 논의의 대상이 아니라, 국회가 신속히 처리해야 할 핵심 경제입법 과제다. 그러나 제도화가 늦어질수록 혁신기업과 자금은 해외로 이탈하고, 국내 기술 생태계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 입법의 지연은 곧 산업 경쟁력의 약화를 초래한다.

따라서 토큰증권은 규제의 대상이 아니라, 입법을 통해 보호하고 육성해야 할 전략산업이다. 정부와 국회는 산업 성장의 관점에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중소기업이 실제로 활용할 수 있도록 발행 절차와 비용을 합리화하고, 기술 가치평가·매출정보 검증·투자자 자동배당 등 핵심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또 일정 규모 이상의 자금을 조달한 기업에는 정책금융 연계나 세제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토큰증권을 통해 자금을 유치한 기업에 정책금융을 매칭하거나 배당소득세율을 완화하는 방식은 자금순환과 투자 활성화를 동시에 촉진할 수 있다.

지금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토큰증권 발행·유통 법제화의 조속한 통과다.

이 법은 단지 새로운 금융상품을 위한 규제가 아니라, 중소기업과 혁신 산업을 위한 자금순환의 새 길을 여는 법이다. 중소기업은 한국 경제의 뿌리이며, 이들의 자금조달 구조가 국가 혁신의 속도를 결정한다.

세계는 이미 토큰증권을 미래 금융의 핵심 인프라로 받아들이고 있다. 한국이 이 변화를 뒤따르는 국가가 아니라 선도하는 국가가 되려면, 지금이 바로 행동할 때다. 국회의 입법이 혁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그럴 때 중소기업은 더 넓은 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한국 금융은 기술을 통해 세계 자본시장과 나란히 설 수 있을 것이다.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한패스 대표·공학박사

〈필자〉 이근주 한국핀테크산업협회장은 IBK기업은행에서 스마트금융업무를 총괄한 후, 핀테크분야에서 전문성을 이어가며 소상공인간편결제사업추진단장, 한국간편결제진흥원장, 동국대학교 겸임교수 등을 역임했다. 현재는 글로벌 핀테크기업 한패스(주)의 경영혁신부문 대표이자, 540여개 국내외 핀테크기업이 소속된 한국핀테크산업협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