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월 7일부터 10일까지 평창에서 성황리에 마무리된 전력전자학회(KIPE)의 2025년도 전력전자학술대회는 전력 산업의 현재와 미래를 조망하는 의미 있는 장이었다. 연구자들과 국내외 주요 기업이 참여한 이번 학술대회에서는 416편의 논문 발표, 71개의 전시 부스, 다양한 기술 세션으로 전력 산업 기술의 혁신적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특히 와이드 밴드갭 반도체의 기술적 성숙도가 예상보다 빠르게 진전되고 있다는 점이 주목을 받았다. 실리콘 카바이드(SiC) 기술은 기존 실리콘 대비 스위칭 손실을 대폭 감소시키며, 시스템 전체 효율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린다. 질화갈륨(GaN) 기술 역시 고주파 영역에서 성능을 개선, 전력 밀도를 기존 대비 3배 이상 향상시키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성능의 향상을 넘어선 시스템 레벨 혁신이다. 디지털 제어 알고리즘과 전력 반도체의 융합을 통해 실시간 최적화가 가능한 적응형 전력 변환 시스템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인공지능(AI) 기반 예측 제어와 결합돼 전력 시스템 신뢰성과 효율성을 동시에 극대화하는 새로운 접근법을 제시한다.
이재명 대통령이 본격적으로 추진 중인 첨단산업 육성 정책으로 전력 산업 전반에서도 많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특히 1호 공약인 'AI 산업 3대 강국' 진입은 전력 산업 생태계 전반의 혁신을 가속화할 것이다. 정부의 '에너지 고속도로' 건설은 전력 인프라를 비롯해 전력 기술의 고도화를 통한 에너지 효율성 극대화와 탄소중립 실현을 목표로 한다. 전력망 현대화, 탄소중립을 위한 에너지 전환 정책은 전력 반도체의 기술 발전에도 강력한 추진력을 제공한다.
전기차, 데이터센터, 신재생에너지, 스마트그리드, 모든 미래 산업의 핵심에는 전력 반도체가 있다. 글로벌 기업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전력 반도체를 핵심 전략 분야로 설정, 체계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그 과정과 결과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던 것도 이번 학술대회의 중요한 성과였다.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와 같은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의 발표와 전시로 단순한 제품 개발을 넘어 생태계 전반의 혁신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열 관리, EMI 최적화, 기능 안전성을 아우르는 통합 솔루션이나 고전압 시스템에서 SiC 기술로 충전 시간을 획기적으로 단축하면서도 시스템 신뢰성을 보장하는 접근법도 인상적이었다.
학술대회에서 확인된 기술 발전 방향은 명확하다. 첫째는 소재 혁신을 통한 기술적 한계 돌파, 둘째는 패키징 기술 고도화를 통한 시스템 집적도 향상, 셋째는 디지털 기술과의 융합을 통한 지능형 전력 관리 시스템 구현이다. 이 세 축이 만나는 지점에서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전력 반도체와 AI 결합이 가져올 혁신적 변화다. 머신러닝 알고리즘을 활용한 실시간 부하 예측과 최적 제어를 통해 전력 변환 효율을 극대화하고, 예측 정비를 통한 시스템 신뢰성 향상이 현실화되고 있다. 이는 전통적인 전력전자 분야가 정보통신기술(ICT)과 본격적으로 융합하는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의미한다.
와이드 밴드갭 반도체는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니다. 지금 당장 시장을 뒤흔들고 있는 현재 진행형 혁명이다. 이번 학술대회는 전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전동화 및 AI 혁명 시대에 전력 반도체를 이용한 전력 변환 기술의 역할과 시장의 진화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가 전력변환 기술 분야의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으려면 글로벌 기술 동향 파악에 기반한 전략적 대응이 절실히 필요하다. 메모리 반도체에 이어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도 국제 경쟁력을 확보함으로써 탄소중립 시대에 전력 기술 강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 한다.
최우진 전력전자학회 회장·숭실대 전기공학부 교수 kipe@kipe.or.kr